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문단 편집) == 평가 == > '''로마의 칼'''[* 반면 지구전 전법으로 한니발을 상대하던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파비우스]]에게는 '''로마의 방패'''라는 별명이 붙었다.] >---- > 당대 마르켈루스를 가리키던 별명 직접 정찰을 나서는 면이나, 갈리아 원정에서 적의 장군과 직접 결투를 행하는 점, 시라쿠사에서 보여준 면모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의 발목을 잡던 용맹한 면모 등을 종합해봤을 때 호전적이고 행동력 있으면서도 문화의 가치를 아는 문무양면으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군사적 실력은 아마 스키피오를 제외하고 로마군의 최고 수준이라 할만한 자로 그가 지휘한 로마군은 몇 차례의 작은 손실을 겪을지언정 결정적으로 패배하는 일이 없었고 특히 공성전에서는 공격하면 점령하고 방어하면 격퇴하는 신묘한 솜씨가 있었다. 이런 인물이 특이하게도 당대 로마 시민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었음은 주목할 만한데, 시민들에게 그는 "너무 엄격하다", "무자비하다"라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한니발 전쟁 초기에 파비우스의 지연전 주장이 인기가 없었던 것처럼, 마르켈루스의 물어뜯기형 추격전은 당시 로마군이 야전에서 전멸하지 않고 한니발을 상대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고 또 결과적으로 분명 의미있는 방식이기는 했으나 그만큼의 수많은 패퇴와 막대한 아군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었다. 결국 남부 이탈리아에서 한니발과 맞서는 동안 계속해서 인적 손실을 겪자 그를 탄핵시키려는 움직임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시칠리아 담당 집정관이 되자 시칠리아 시민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러 로마에 방문할 정도였다. 마르켈루스가 사망했을 당시 그에 대한 로마 시민들의 평판이 점점 나빠져 "마르켈루스의 업적이 봉헌된 신전이 지나치게 많다", "모두 내려야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이 일화로 마르켈루스가 능숙한 정치가이기보다는 전형적인 군인의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